CIK-최인규 綜合資料房/8240 KLO

[스크랩] 8240 켈로부대약사

雲光 2013. 8. 10. 23:08

첩보유격대 .8240부대 약사

 

6.25를 전후한 미군 관할의 첩보유격부대 약사

미군의 지휘를 받는 첩보부대로 널리 알려진 부대로는 1948년(?)미CIC 산하에 서북청년단을 중심으로 한 이북출신들로 창설된 켈로부대가 있었는데 전사 실종된 숫자가 3400여명에 달하고 생존대원은 수백 명으로 밝혀지고 있었고
이 부대는 1951년 9월 8240유격첩보부대로 통합되었고 다시 1952년 6월에 8240부대에서 이탈되어 활동하다가 휴전이후 53년 9월에 해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미군의 정보조직은 1945년 9월 9일 미 24군단이 한국에 들어올 때, 미 육군 방첩대인 제224 CIC가 처음 같이 따라 들어옴으로서 시작됩니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2차대전 때 전략첩보부대(OSS)가 맹위를 떨쳤지만 종전과 함께 해체되었고 그 빈자리를 미 CIA가 대신하지만 겨우 50년 5월에 동경에 지부를 세웠을 뿐이어서 뒤늦게 한국전에 참전하였지만 미 CIA의 대북첩보활동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크게 알려진 것도 없었습니다.
미 CIA의 통제를 받은 OPC(JACK)은 부산 동래 베이커 기지에 근거를 둔 부대로 이 산하에는 영도부대(일명 Y부대)의 1000여명이 함경도 산악과 동북부 내륙지역을 대상으로 활동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미 육군 방첩대(CIC)는 동경의 441파견대의 통제를 받았는데 1949년 6월 주한미군의 철수 때 같이 철수하였고 CIC가 수행했던 대북공작활동은 켈로부대(KLO)와 미 공군의 첩보부대인 인간첩보부대가 계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 8군의 제308방첩대가 처음 투입되었고 이 부대가 방첩대로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부대입니다.
주한연락사무소인 켈로부대는 전쟁이 일어나자 미 방첩대와 같이 미 제8군 정보참모부(G2)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

켈로부대의 주축이 되었다는 구월산 유격대는 원래 그 당시 서해지구에서 남한과 가장 가까운 구월산으로 몰려든 자생유격대를 총칭하는 말로 내륙 구월산 일대에는 연풍부대, 백호부대, 수월부대, 송화치안대 등등을 포함한 몇 개의 자생유격대들이 있었고 그 중 최후로 남은 구월산 유격대는 53년 김정숙을 대장으로 둔 자생유격대로 54년까지 활동하다가 소멸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그 외 구월산을 감싼 상부지역의 은률군과 그 앞의 초도, 하부지역의 장연군과 그 앞의 백령도, 그 밑의 옹진반도 등에는 신천무장치안대, 신화치안대, 송림부대, 옹진학도유격대 등이 활동하였습니다.

서해도서로 이동한 구월산 유격대는 고트, 선, 위스키로 3개 지대로 크게 나누지만 그 외 초도, 주문진 등에 파견대를 두고 있는 등, 활동지역에 따라 여러 계파의 분견대를 두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백령도의 레오파드 부대의 통제를 거치며 51년 4월 동키부대란 명칭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 휴전선 이남의 안전지역인 강화도의 울프백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
이들을 일러 켈로부대 또는 동키부대라고 하였지만 켈로부대는 8240부대와 동의어가 되어 8240부대란 미군 산하의 첩보유격대를 총칭하는 말로 켈로부대도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구월산 유격대는 협의로는 동키부대로 광의로는 켈로부대라고 칭하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활동하던 잔존 구월산 유격대는 정전을 앞두고 일부가 백령도로 철수하였는데 미군이 이들을 모아 다시 동키부대(당나귀)를 만들었고 이런 동키부대 또는 켈로부대의 일부대원들과 기타 월남청년들이 HID 직할 제1교육대에 들어가 휴전 후, 설악대를 이루는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미 공군의 첩보부대인 인간첩보부대의 뒤를 이은 제6004 항공정보대 산하에 제1특수부대(일명 NICK)가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미군의 편제를 보면, 좀 복잡하지만
1951년 1월에는 극동군 사령부 연락단이 창설되어 육,해,공군의 첩보활동을 조정하게 되었고
1951년 1월 15일에는 제8군 G3 특수처 유격전과 설치되어 8군산하의 모든 유격대 업무를 관장하지만 5월 5일에 폐지되었고
그 후 7월에는 극동군사령부 연락단이 제8240부대로 명명됩니다.

이 8240부대의 예하에 주한유엔군 유격부대(UN PFK-켈로의 8240부대), CIC의 308방첩대대, CIA의 JACK(Y부대), 6004공중첩보대의 NICK이 있게 됩니다.
그 외 미국무성 산하의 SOU(무지개부대)가 1952년 4월 창설하여 사이판에서 훈련받았던 경우가 있었지만 주로 공비토벌에 관여하였고 그 외 특별히 알려진 활동사항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통제하의 유격부대들은 윌리엄 에이블 기지, 레오파드 기지, 베이커 기지, 커크랜드 기지, 울프백, 한국해병중대로 편성된 레드윙 특수임무부대 등이 있었습니다.

윌리엄 에이블 기지는 서해안의 자생 유격대를 미군이 통제하기 위하여 백령도에 51년 2월 15일에 창설하였고
이 윌리엄 에이블 기지는 3월에 표(레오파드)부대로 공식 명명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에는 구월산 등의 무장치안대를 유격연대로 개편하고 동키부대로 명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켈로부대는 원래 6.25전부터 미 방첩부대(CIC)산하의 한국인 첩보부대로 출발하여 6.25전쟁 중 8240부대의 지휘를 받으며 미 G2 산하의 한국인 첩보유격부대를 통칭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나중에 8240부대로부터 독자적으로 떨어져 나와 활동한 것으로 보이고 잔존 구월산 유격대가 정전을 앞두고 다시 백령도로 나오자 다시 동키부대를 재창설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결국 구월산 유격대가 주축을 이룬 켈로부대와 동키부대는 시차로 다른 이름을 가졌을 뿐 같은 부대로 추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사유격대(백골병단)는 동해지역에서 을지제1병단을 창설하였고 그 후 51년 4월 15일에 창설된 주문진에 있었던 미8군 산하의 커클랜드 기지로 흡수되었고 이 부대는 주로 고성 앞바다의 난도와 솔섬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육군본부는 1951년 3월 27일 강화도에 서해안 도서의 자생 유격대를 규합한 을지제2병단을 편성하였지만 같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표(레오파드)부대의 통제를 받게 되었고
51년 8월 10일 강화도에 창설된 울프백 기지의 예하로 흡수되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서해지역에는 강화도에 있는 울프백의 통제를 받는 레오파드부대와 켈로부대가 있었고
동해지역에는 주문진에 있는 미 8군의 커크랜드 기지의 결사유격대가 있었으며
남해지역에는 부산에 있는 베이커 기지의 JACK산하의 Y부대가 있었다고 최종 결론을 지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 6004 공중첩보대의 NICK과 308방첩대대 정도가 가장 대표적인 미 산하의 유격부대와 첩보부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외는 거의 무시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휴전 후 53년 8월 16일 주한 미군사령부는 유격대를 한국군에 이관하여 국군제8250부대가 임시로 창설되는 것으로 일단락됩니다.

(※ 한미군사관계사, 한국전쟁 해전사, 한국전쟁, 그 외 등등의 자료들을 참조하였습니다.)

출처 : vhvsun
글쓴이 : 최영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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