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채호 “부여국서 시작된 고유놀이” -
윷의 도는 돼지의 저가, 개는 구가, 윷은 우가, 모는 마가를 표시하고 있으나
걸은 의문으로 남겨둔다고 했다.
걸은 임금자리인 기내(畿內)의 벼슬아치(양을 상징)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곧, 도는 돼지(豚)를, 개는 개(犬), 걸은 양(羊), 윷은 소(牛), 모는 말 (馬)을 가리킨 말이다.
이때 行馬(행마)하는 법이
이들 가축의 이름이 이용되면서, 몸의 크기와 걸음의 속도가 윷놀이에 반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시 부여가 수렵시대를 지나고 농사와 목축을 하는 시대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윷은 가락윷(채윷) · 밤윷(좀윷) · 콩윷(또는 팥윷)으로 크게 나눌 수 있고,그밖에 상수리나 도토리 · 살구씨 · 은행 등으로도 놀게 된다.
가락윷[석사, 析柶]은 박달나무 · 밤나무 · 통싸리나무 또는 참나무 등을
대개 한 뼘 남짓한 길이(15∼20cm)의 곧고 둥근 모양으로 2개를 만든 후
반쪽을 내어 배가 약간 불룩한 네 가락이 되게 한다.
이는 다시 작은 윷 · 중윷(서울윷) · 장작윷(장자윷)으로 나눠지는데,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밤윷은 모양은 가락윷과 같으나 크기가 새끼손가락 정도로,
나무를 길이 2∼3cm의 밤알만 하게 만들었다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 윷은 조그만 간장종지 등의 그릇에 담아 손바닥으로 덮어 쥐고 흔들어
바닥에 밤윷만 내던지는 방식으로 논다.
주로 경상도 등지의 남부지방에서 많이 놀며,
서울의 경우 대부분 도박용으로 쓰이며 일반인들의 놀이용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콩윷이나 팥윷은 콩이나 팥알의 한쪽에 작은 구멍을 파 앞뒤를 가려보게 만들거나
절반을 쪼개 만든 윷으로,
농민들이 작업하다 잠시 쉬는 사이에 놀았는데, 주로 북부지방에서 많이 논다.
윷판은 둥근 원 안에 십자를 그리고 밭 29개를 그려놓았다.
가운데 방을 중심으로 배치한 28개마다 우리말의 이름을 붙였다.
곧 입구를 '도', 길이 갈라지는 곳을 '모', '뒷모', '찌모'라 부르며 출구를 '참먹이'라 했다.
윷판을 보면 '방'이 가장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아 중심축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런 윷판에 어느 때부터인지 확인할 수 없으나 밭마다 하늘의 별자리인 28수(宿)를 표했다.
중심인 방을 '추(樞)'라 했다.
추는 ‘가운데’ 또는 밑동과 지도리라는 뜻이며 북두칠성의 첫 별자리 이름이기도 하다.
북두칠성은 임금의 자리이며 추성은 임금별로 친다.
북두칠성은 자리를 옮기지 않아 고정불변이다. 그리하여 뭇 별이 임금별을 싸고돈다.
이런 상징성을 살려 임금은 북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남쪽에서 바라보는 신하를 마주한다.
경복궁도 임금자리를 북쪽에 배치했다. 임금이 어느 곳을 가던 이런 자리 배치는 변함이 없었다.
조선 중기에 살았던 문인 김문표(金文豹)는 <사도설(柶圖說)>에서 명쾌하게 해석을 달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윷판의 전체 주변이 둥근 것은 하늘,
중심에는 십자를 그려 모남을 그린 것은 땅을 나타낸다고 했다.
곧 천원지방(天元地方)의 천문사상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의 해석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가운데 있는 별은 추성이요, 옆으로 벌려 있는 별은 28수이다.
28수 주위를 태양이 돌고 있으므로(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이치를 달리 표현한 말)
하루가 생기고 일년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태양이 28수를 돌 때 멀리하고 가까이 함으로 사계절이 생기듯이,
윷말이 가는 길도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태양(해)의 진행은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가서 가운데를 거쳐 다시 북쪽으로 나오는데
동지의 해가 짧음을 나타낸다.
즉 ‘도(첫밭)'에서 시작해서 ‘모’를 거쳐 ‘방’에서 빠져나가는 짧은 길은 동지를 의미하고,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갔다가 다시 북쪽으로 나옴은
춘분의 해가 고름을 나타낸다.
즉 '도'에서 '모'를 지나 ‘뒷모’에서 '방'을 서서히 빠져나가는 길은 한낮에 이루어지는 춘분이고,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과 남쪽을 거쳐 북쪽으로 나옴은 추분의 방이 고름을 나타낸다.
즉 '도에서 '모'에 서고 '방'을 지나 ‘찌모’를 나간 다음 ‘참먹(끝밭)'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한 밤에 이루어지는 추분을 의미한다.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을 거쳐 남쪽과 서쪽을 지나고 다시 북쪽으로 나옴은
하지의 해가 길음을 나타낸다.
즉 '도'에서 '모', '뒷모', '찌모'를 지나 한 바퀴 돌아서 '참먹(끝밭)'으로 빠져나가는
가장 긴 길은 하지를 의미한다.
김문표(金文豹)는 <사도설(柶圖說)>에서 말발의 진행이 해와 절기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곧 하늘의 별과 해, 이에 따라 땅의 계절 변화를 적용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원리에 따라 28수의 별자리를 배치했다.
그러므로 28수는 옛 기록에 적혀 있는 순서대로만 배치하지 않았다.
이 설명에서는 윷판의 입구를 북쪽의 방향에서 설정해 풀이했으나
여느 사람들은 남쪽(아랫쪽)을 출발점으로 삼아 놀이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28수를 그린 윷판을 가지고 놀이를 벌이면
자연스레 별자리 이름을 익히게 되는 교육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 종 9품~영의정 관직 적은 윷판 '승경도' -
한편 별자리를 배치한 윷판과는 다른 윷판도 있었다.
곧 종정도(從政圖) 또는 승경도(陞卿圖)이다.
이 도판은 큼직한 종이에 종9품부터 영의정까지 내직이든 외직이든 모든 관직의 이름을 써놓았다.
곧 참봉 만호 같은 하위직에서 판서 대제학 병사 수사 등 고위직을 망라하여
문관 무관을 구별치 않고 적은 것이다.
처음 출발할 때
도나 개가 나오면 좋지 않은 벼슬을 받게 되며 윷이나 모가 나오면 좋은 자리를 받는다.
그러나 벼슬살이를 계속하는 동안 좋은 말밭을 걷게 되면
고속승진이 보장되어 현관(顯官)의 자리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나쁜 말밭을 걷게 되면 유배를 가기도 하고 파직을 당하기도 하면서 낙백의 길을 걷게 된다.
또 낮은 등급으로 강등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사약을 받은 것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이는 본디 중국 쌍륙놀이를 조선 초기 하륜이 우리의 관직에 맞게 변형시켰다고 한다.
관료사회의 규정과 특성을 치밀한 구도로 짜서 만들었다.
물론 벼슬을 중시하는 관료사회의 산물이기는 하나
윷판의 천문사상을 인문정신으로 바꾼 한 모델이 된 것이다.
청소년들은 종정도를 이용해 윷놀이를 벌이면서 모든 관직을 외우게 되고
관직생활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수양의 정신을 되새기게 된다.
1940년경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나 '조선여행 윷놀이'라는 것이 서울 상가에서 팔렸다고 한다.
일종의 개량 윷놀이로, 윷판에는 승람도와 같이 한국지도를 응용해 지명을 써넣었고,
윷판의 선 대신에 발달된 교통로가, 말 대신에 기선 · 기차 · 자동차 · 비행기라는 네 개의 교통기관이
윷판에 있는 전국의 도시와 명산대찰들을 유람하면서 경주하는 방식이었다.
이 윷판의 지명 · 산명 · 사찰명 등은 한글 · 한자 · 로마자로 기입되었고,
설명문도 영어와 일본어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윷놀이가 한 때 수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명절’과 민족놀이를 억제하는 과정에서 윷놀이도 압제를 받기도 하였으나
광복과 함께 다시 살아나 농촌 마을과 도시를 기리지 않고 곳곳에서 마을 대항으로 척사대회를 벌였다.
또 두 사람을 단위로 놀이를 벌일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패를 갈라 놀이를 할 수도 있어서
그 겨루기 범위가 넓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부터 크게 유행했던 것이다.
따라서 윷놀이는 민중의 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받세9기 綜合資料房 > 역사자료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北印度 여행 (0) | 2012.03.24 |
---|---|
국보 찾기=국보 1호~100호 탐방여행 (0) | 2012.03.13 |
비문 쓰는법 (0) | 2012.01.27 |
영물(靈物) 龍에 대한 모든 것 (0) | 2012.01.26 |
세계박물관 소개 (0) | 2012.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