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동일화와 논리적 유추
-최원현의 수필 쓰기-
여세주
1.시작하며
최원현은 1987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수필가로서 매우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30년 동안의 문학 활동을 통해 19권의 저서를 펴냈다. 수필집이 12권, 수필선집이 4권, 수필평론집이 2권, 수필가 인터뷰가 1권이다. 그만큼 그는 보기 드문 필력을 발휘해 왔다.
이처럼 방대한 수필세계를 몇 가지 항목 속에 가두는 것은 부적절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많은 작품들을 모두 섭렵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 많은 작품 중에서 작가 자신이 직접 추려서 묶은 선집은 그간의 대표작을 모은 작품집이라고 전제할 때,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된다. 이들 선집에 수록한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작품세계를 아쉬운 대로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숨어있는 향기》(교음사, 2003), 《그리움 열기》(좋은수필사, 2009), 《그리움을 밝히는 세 개의 이미지》(문학관, 2011), 《누름돌》(범우사, 2017)이 최원현의 수필선집이다.
문학은 작가의 언어적 구성물이다. 최원현의 수필에는 가슴 깊이에서 길어낸 언어들이 담론을 특징짓고 있다. 그의 필치는 경험을 그려내는 구체적인 언어보다는 경험의 의미를 유추해내거나 감성적 서정을 펼쳐내는 사유의 언어에서 빛을 발휘한다. 구체적인 언어를 통한 경험의 형상화보다 관념적인 언어에 의한 의미 유추나 정서 표출의 과정에서 그의 글쓰기 특성이 확인된다. 특별한 경험적 사실보다 사유의 유장한 표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수필작품을 만들어내는 주요 메커니즘이다. 수필은 사유를 주식主食으로 삼는 장르이므로 사유가 빈곤하면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지는 운명을 면치 못한다. 이런 형식적 측면에서 볼 때, 최원현의 수필은 매우 건강하다.
최원현의 수필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담론적 특성을 미리 통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그의 수필작품에서 정서 표출 또는 의미 유추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2.그리움으로 수렴된 서정의 초극
수필가 최원현은 매우 감성적이다. 그런 성격을 <자화상>이나 <어른 아이> 등의 수필에서 읽을 수 있다. 작가의 여린 감성 탓에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감성적일 때가 많다. 작가의 감성적 느낌을 드러내어 독자의 정서 환기를 의도하는 서정수필이 최원현의 수필세계를 거의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작가의 성정이나 성장 환경에 기초를 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문학 텍스트는 언어적 형상물이면서 작가의 정신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서정수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그리움의 정서이다. 많은 작품에서 작가의 경험이나 사유는 그리움의 정서로 수렴된다. 그리움의 대상은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외할아버지일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외할머니이다. 어머니나 아버지, 외할아버지 등에 대한 그리움조차도 외할머니를 통해서 이끌려 나온다. <그리움 열기>・<엿 이야기>・<저녁노을>・<누름돌>・<고자바리> 등에서는 외할머니, <하얀 고무신>에서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종소리>에서는 외할머니와 이모, <그리움을 맑히는 세 가지 이미지>・<무명 기저귀>・<겨울 사모곡> 등에서는 외할머니와 어머니, <어머니의 눈>・<오월 그리고 어머니> 등에서는 어머니, <오는 것 가는 것>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작품의 저변에 깔려 있다.
그래서 나의 문학은, 나의 수필들은 이 그리움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되었으련만 그게 잘 안 된다. 이제 아내도 나도 나이 쉰이 넘었다. 아이들도 다 자라 가정을 꾸릴 때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분명 변해야 되지 않을까. 내가 변해야 내 글도 변할 것 아닌가. 늘 어린 아이처럼 옛것에 매인 바 되고, 그리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른스러움이 아니잖은가.
하지만 어쩌랴.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어가도 더욱 진해지고 깊어지는 옛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것은 남들에게 하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것밖에 없는, 결코 포기하거나 버리거나 잊을 수 없는 내 전부인 때문이 아닐까.
-<그리움을 맑히는 세 개의 이미지>에서
최원현에게 그리움은 쉽게 수습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수필세계에서 그리움의 감정을 표출한 수필들이 하나의 범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주제뿐만 아니라 창작 방식에서도 하나의 유형성을 지니고 있다. 객관적 상관물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을 객체와 결부시키는 방법이 그것이다. 즉, 객관적 상관물로부터 객체를 호출하고 객체에 작가의 감정을 이입시킨다. 이 과정에서 대상이 되는 객관적 상관물과 객체인 타자, 그리고 주체인 작가의 사이에 감정적 동일화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동일화란 대상과 동화하려는 ‘대상 친화적 관계’를 의미한다. 그리움의 정서를 드러내고자 한 최원현의 수필에서는, 주체가 대상을 일방적으로 동일화시키는 대신에 대상에 다가가고 대상과 교감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움 열기>는 외할머니가 오래 전에 선물해 준 개다리소반에 대해 말한다. 이것을 통해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불러낸다. 개다리소반은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객관적 상관물이다. 이것에는 외할머니의 이미지가 투사되어 있다. 비록 오래된 물건이지만 개다리소반을 버리지 않고 유달리 아끼고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외할머니의 유품이며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여는 창이기 때문이다. 개다리소반은 늘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외할머니의 자애로운 미소는 작가가 가장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그리움이다. 작가는 결말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어쩌면 할머니께서는 이 볼품없는 개다리소반을 통해 늘 가까이에서 나와 아이들에게 남아 있고 싶으셨는지 모른다”고. 객관적상관물인 개다리소반과 객체인 외할머니, 그리고 주체인 자아의 감정적 동일화가 이루어지는 꼭짓점이다. 이 감정은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염된다.
<하얀 고무신>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의 글쓰기가 이루어진다. 이 작품에서는 아내가 사 온 흰 고무신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대유代喩로 제시한다. 구성미학의 차원에서 보면, 이 작품의 창작의도는 고무신에 얽힌 옛 추억들을 얽어매어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작가의 시선은 하얀 고무신에서 환기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이미지에 쏠리고 만다. 하얀 고무신에 감정이입이 일어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만난 듯한 환상에 빠져든다. 하얀 고무신은 외할머니의 정갈한 이미지와 동일시되기도 하고 외할아버지의 고무신이 되어 그분들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자아낸다.
최원현의 수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작가의 성장 환경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는 부모의 부재不在로 세 살 때부터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의 부친은 작가가 첫돌을 막 지난 시점에, 모친은 그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의지할 곳 없는 그를 연민과 사랑으로 애지중지 키워준 이가 외할머니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특별하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버지 부재, 이에 따른 심리적 소외와 불균형을 외할머니의 사랑으로 극복할 수는 없었다. <그리움을 맑히는 세 개의 이미지>에서 “할머니와 이모의 사랑이 넘치도록 컸다 해도 가슴 한 구석에 부모님에 대한 채워질 수 없는 허전함이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외할머니는 그가 기억해 내고 싶은 어머니의 원형적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고립감이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더욱 짙게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늘 외할머니를 통해 한 마디 가락과도 같이 살아나기 때문”이라고 한 <겨울 사모곡>에서의 고백은 이러한 심리 현상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의 수필세계에서 외할머니의 사랑과 그것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 작품이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부모님에 대한 기억 자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차적으로는 어머니의 상실에 대한 심리적 방어기제의 표출로 보인다. 너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기에, 어머니의 부재가 외할머니의 자애로움으로 대체되어 나타나고 부모님의 모습은 오직 외할머니로부터 건네받은 유품을 통해 형상화될 뿐이다.
<오월 그리고 어머니>와 <무명 기저귀>, 그리고 <어머니의 눈>은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쏟아내고 있는 수필이다. 이들 작품에서 5월, 무명베, 그리고 빛바랜 사진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오는 객관적상관물이다. 그 상관물을 객체인 어머니와 동일시하고 자아의 감정을 이입하여 동일성을 추구하고 있다. 작가는 오월이 되면 해마다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담은 편지를 써서 봉해 놓곤 한다. 어머니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지만, 결코 떠난 것이 아니다. 5월이 되면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외로움이 더욱 짙어지는 병을 앓는다고 쓰고 있다. 어머니가 작가에게 남긴 유품이라고는 외할머니께서 보관하다가 준 무명베와 모시 한 필,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전부이다. 외할머니는 어느 해 여름, 모시로 반바지와 조끼를 만들어 주셨고, 무명베는 아이를 낳으면 기저귀감으로 쓰라고 했었다. 사진 속에서 따스한 웃음을 짓고 있는 어머니,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어머니의 모습은 작가에게 상상 속의 이미지일 뿐이다.
어머니는 다른 동네까지 유명할 만큼 베를 잘 짜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베틀을 내리는 날쯤 되면 그걸 서로 가져가겠다고 다툴 정도였으며 그렇기에 미리 부탁을 해오는 사람도 많았단다.
…(중략)…
힘들고 지쳐있던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그리워져 그 무명베를 꺼내 냄새를 맡아보던 때가 있었다. 특유의 오랜 옷감냄새 속에서 ‘슉삭 철커덕’ 북이 지나고 베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명 기저귀>에서
수필가 최원현에게 그리움은 곧 아픔이요 상처다. 그리움이 자신의 삶 전부였고 자신의 수필도 그리움의 정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고자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려 한다. 그가 그리움의 인력에서 벗어나 새롭게 안착하고자 하는 삶의 둥지는 생명의 가치와 자연의 섭리가 작동하는 세상이다.
<살아 있어야 아름답다>에서는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를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생명력이 미의 원천이고 ‘살아있음’이 존재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행복의 강>에서도 작가는 살아있음이 최고의 축복이라고 한다.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의미일 것이다. 살아 있을 때에만 삶의 의미도 주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삶이야말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고의 축복이다. 더욱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은 결코 다른 어느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오직 나만의 삶이요, 내가 챙기며 살아야 할 내 몫의 삶이다.
-<행복의 강>에서
거기에다가, 강물의 “유유한 흐름처럼 순리의 삶을 살고프다”고 한다.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은 최원현의 수필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삶의 이해이며 지향이다. <난 앞에서>는 더디게 싹을 틔운 난을 통해 기다린다는 것,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기다림과 희망이라는 의미소는 궁극적으로 의식의 미세혈관을 타고 흘러 희망을 품고 작가의 성장을 기다려준 외할머니에게 가 닿지만,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하고 그것을 거스르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질타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땅따먹기>에서는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자연의 질서를 지각하고 소유욕에서 벗어나는 것도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삶이라고 인식한다. 안경이 삶의 나이테가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의 나이테>에서도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질서라고 하였고, <부끄러운 열매>에서는 수세미 씨를 제철에 심지 않은 경험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을 제때에 하지 않는 것도 자연의 질서를 따르지 않은 잘못이라고 한다.
삶의 아름다움을 살아있음에서 찾는 것이나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은 작가의 심리적 초극 의지이면서 세계관적 지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또 다른 형태의 심리적 방어기제에 지나지 않는다. 부모 부재에 따른 상실과 결여의 심리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의 감정에 둥지를 틀었다가, 그 감성의 늪지대에서 빠져나와 ‘살아있음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순리에 따른 삶의 지향’으로 그 방향키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2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부모님, 그들의 너무나 이른 죽음은 자연의 섭리에 따른, 아니 어쩌면 자연의 질서를 거스른 것이며, 살아있음의 가치를 가슴 깊이 새겨 넣는 안타까움이다.
그리움의 정서를 표출한 최원현의 서정수필은 대체로 객관적상관물과 타자를 동일화하는 방식으로 형상화된다. 다시 말하자면, 사물에 객체의 이미지를 투사시켜 동일시하고, 객체인 타자에게 주체인 자아의 감정을 이입하여 정서적 동일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창작방식은 서정수필 쓰기의 전형으로 삼아도 모자람이 없다.
3.유추 해석을 위한 확산적 사고 과정
최원현의 수필 쓰기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사고의 확장을 통한 논리적 통찰력에서 찾을 수 있다. 사고를 밀고나가는 작가의 힘이 대단하다. 그가 사고를 이끌어가는 데에는 치밀한 논리와 지성적 판단을 동원한다. 지성과 논리에 의한 합리적 해석을 통해 대상에 대한 개념적 인식에 이르려고 한다. 대상에서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기까지 조곤조곤하게 유추해 나가는 작가의 사유는 상당히 분석적이다.
이처럼 사유의 저력을 보여주는 최원현의 수필은 주로 최근에 나타난다. 논리적 사유의 확산을 통해 어떤 인식에 이르려는 글쓰기는 특정 언어의 개념적 또는 함축적 의미를 분석적으로 추적하여 주제를 이끌어내는 일련의 수필작품들에서 잘 확인된다. <먼저 좋아>, <그냥>, <아님 말고>, <문>, <응시> 등이 이들에 해당한다. 하나의 단어를 개념 의미로 풀어나가는가, 함축 의미로 풀어나가는가의 차이가 있지만, 이들 작품에서 치밀한 추론을 통해 말의 사전적 의미를 전환하거나 치환하여 삶의 경구들을 이끌어내는 글쓰기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반서정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먼저 좋아>는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더 좋다는 말을 ‘하부지가 먼저 좋아’라고 표현한 손녀의 말에서 사유를 시작한다. 삶의 새로운 원칙 하나를 깨닫게 되는 사유의 과정을 치밀한 논리로 펼쳐낸 수필이다. ‘더’의 자리에 ‘먼저’라는 단어를 찾아 넣은 말의 오류가 오히려 새로운 삶의 목표와 방향을 선물해 주었다는 것인데, 치밀하게 추론해 나가는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더’는 비교하는 말이고 ‘먼저’는 행동의 순서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지식을 먼저 동원한다. 그리고는 더 크고, 더 많고, 더 높고, 더 좋은 것만 바라듯이 우리는 ‘먼저’보다 ‘더’를 훨씬 좋아하며, ‘더’란 욕심의 표현에 쓰일 때가 많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실증적인 유추 해석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인식적 즐거움을 얻게 한다. 작가의 실증적 사변은 ‘먼저’와 ‘더’의 갈림길에서 주저하며 ‘더’를 선택했던 자신을 발견케 하고 어떤 행동이든 ‘먼저’ 해야겠다는 윤리적 자아 성찰의 아포리즘을 도출하기에 이른다.
<응시>는 모진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오다가 비로소 주목받게 된 어느 젊은 가수의 라이브 콘서트 동영상을 소재로 삼았다. 가수의 열창에 빠져든 사람들로부터 ‘응시’라는 단어를 화두로 꺼낸다. ‘눈길을 모아 한곳을 똑바로 바라봄’이라는 사전적 의미 찾기에서부터 사유를 시작한다. 한곳에 눈길을 모은 다는 것,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지극한 애정이요 관심이라는 함축적 의미를 이내 유추해 낸다. 작가의 사유는 이쯤에서 멈추지 않는다. 다시 연역적인 추론의 과정을 이어가서, ‘응시’에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내포적 의미를 이끌어내는 데까지 나아간다.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을 자아성찰의 아포리즘으로 삼는 것이다. 사랑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볼 때 세상은 따뜻해진다는 인식은 어쩌면 현실의 논리를 훌쩍 뛰어넘는 유추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인식을 신앙적인 차원에까지 은밀히 연결시켜 놓고 있는 듯하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의 눈길을 주어본 적이 있는가. 얼마나 질실하게 누군가를 봐라봐 준 적이 있는가. 나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진심 담긴 눈길로 바라보며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 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중략)… 그런데 오늘도 나를 주시하고 있는 이 따뜻한 눈빛은 무엇인가.
-<응시>에서
이처럼, 최원현은 작품의 마지막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사유를 길게 확장시켜 이어가고 있다. 어떤 단어의 배후에 숨어 있는, 보다 깊은 의미에서 삶의 아포리즘을 이끌어내는 일련의 작품들 외에도 지적이고 논리적 사유를 길게 펼쳐내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눈물병>, <내버려둠에 대하여>, <모자람의 넉넉함> 등이 이들에 해당한다.
<햇빛 마시기>도 은밀한 유추를 통해 사유를 전개시켜 나가는 수필이다. 산부인과 원장인 지인이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투명한 유리잔을 건네며 마셔보라고 권한다. 창가에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둔 것이란다. 이 맹랑한 제안, 그것에서부터 작가의 사유는 시작된다. 작품 서두에 제시된 생경한 경험은 독자의 인식적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작가는 햇빛을 몸속으로 들여보낸다면 어둠 속의 존재들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는 물음을 가장 먼저 던진다. 유리컵에는 “채 마시지 못했던 몇 개의 햇빛 알갱이들이 남아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것같이” 느끼기도 한다. “걸어서는 4,270년이나 걸리는 거리”의 “태양에서 발산된 빛이 대기 속을 뚫고 내려와 발견한 하나의 작은 공간”, 그 컵 속에 안겨서는 어머니의 품속같이 안도하며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산부인과 원장은 어떤 생각으로 매일 햇빛을 마시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상도 해본다.
‘햇빛 마시기’에 대해 느껴보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그 존재의 의미들에 닿는다. 작가가 추론해 내는 의미는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더 많으므로 “보이지 않는 것도 보라”는 충고이다. 세상에는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존재가 더 많으므로, 그러한 존재까지 보는 인식론적 통찰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그러할 때, ‘햇빛 마시기’는 내 안의 어둠을 밝혀주고, 아름답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생각과 마음들을 정화시킨다는 의미에 닿을 수 있다고 유추해 낸다. 햇빛 마시기를 상징적 행위로 해석한 작가의 사유는 마침내 “내 안이 밝아지게 되면 세상도 더욱 밝아질” 것이라는 윤리적 이념에 안착한다.
일반적인 수필에서 경험의 형상화는 길고, 그것에 대한 사유는 집약적으로 짧게 드러내는 게 일쑤다. 그러나 최원현의 수필에서는 경험의 형상화보다는 대상에 대한 논리적 유추 해석에 무게 중심이 놓여 있다. 결말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끈질기게 펼쳐나가는 사고의 원심력은 최원현의 수필을 특징짓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수사학이다.
4. 마무리
최원현의 수필세계는 정서적 동질성의 발견에 의한 것인가, 논리적 유추에 의한 것인가에 따라 크게 범주화된다. 이러한 차이는 궁극적으로 서정적인가와 교술적인가의 문제에 연결된다. 서정적 수필의 키워드인 감성은 구심력을 작동시키고, 교술적 수필의 키워드인 사고는 원심력을 작동시킨다. 정서적 동일화 과정에서는 감정의 수렴이 나타나고, 논리적 유추 과정에서는 사고의 확산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수필을 창작할 때, 논리적 유추를 위해서는 풍부한 지성을 동원해야 하고 정서적 동일화를 통해 순간적 충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감성적 재치를 발휘해야 미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정서적 동일화에 의한 감정의 수렴’과 ‘논리적 유추에 의한 사고의 확산’이라는 두 가지 방식은 최원현의 수필 쓰기에서 작동되고 있는 커다란 두 개의 축이다. 감정은 수렴하지 않고 확산시키면 산만해지고, 사고는 확산시키지 않고 수렴해 나가면 옹색해진다. 그러므로 감정은 수렴하고 사고는 확산시켜야 한다. 이와 같은 최원현의 수필 쓰기 방식이 수필 창작의 일반적인 원리로 확대되어 한국 수필문학의 미학적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방대한 작품들이 구축하고 있는 최원현의 수필세계를 크게 두 줄기의 글쓰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의 결정체인 개별 작품의 개별적 특성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재단하고 지나치게 도식화해 버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이 지류를 찾기 위한 원줄기 살피기라는 점에서 위안을 삼고자 한다.
여세주
문학평론가, (전)경주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수필미학》 발행인. 저서 《새롭게 쓴 수필창작론》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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