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함께하신 모든 님들 임진년 설 명절 맞아서"
"복 많이 받으시고 부자 되세요"
*壬辰年 "흑룡의 해" 福 많이 받으세요.*
(임진년 설날 이침)- 시인 서예가 한 상 진 드림 - 한마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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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 설의 의미 (펌)
"뜻 깊은 설 연휴를 맞으소서!"
설의 뜻은 보통으로는 '슬프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삼가다'(근신)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의 옛말 '섧다'에서 온 것이다.
설날은 일 년 내내 아무 탈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고 그 해 농사와 관련된 여러가지 축원을 하는 날이었으며 원시시대 금제(터부)의 유제일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날엔 새옷을(설빔) 입기도 한다.
설은 봄, 신춘을 맞기 위해 인간이 얼마나 조심하고 근신해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옛 세시기들이 설날을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한 것도 다가올 한해의 낯섦에 대한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설을 언제부터 쇠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민속학자들은 중국의 사서들이 "신라 때 정월 초하루에는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일월신을 배례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아 그 역사가 오래된 것은 분명하다.
축원에 따라 여러가지 놀이와 미풍양속이 하나 둘 덧붙여지면서 겨레의 큰 명절로 지켜져 온 설날의 행사는 섣달 그믐날 밤의 '수세'로 시작된다.
'동국세시기'를 보면
"인가에서는 다락-마루-방-부엌에 모두 등잔불을 켜놓는다.
백자접시에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담아 외양간-변소에까지 환하게 켜놓아 마치 대낮같다.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를 '수세'라 한다" 고 적고 있다.
전통적으로 설날 아침에 조상에 대해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차례나 성묘, 그리고 새배가 종적인 인간관계의 확인이라면 뒤이어 벌어지는 각종 민속놀이는 횡적인 연대감을 강화하는 의식이다.
또 설날의 풍속 중에는 한해의 다복을 기원하는 축원의례와 미래를 예단하는 점복이 있다.
이와 함께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면 일찍 살 수록 집안에 복을 많이 안겨준다는 복조리를 사서 실제 조리로도 이용하고 두, 세 개씩 묶어 방 귀퉁이나 부엌에 매어서 그 속에 돈과 엿을 넣어두기도 했다.
이는 다산을 기원하는 농경사회의 염원과 한해의 부지런해야 함을 일깨우는 풍속이다.
또 설날 이른 아침에 짐승의 소리를 듣고 새해의 운수를 점치기도 했는데 이때 까치소리를 들으면 길하고 까마귀소리는 대흉으로 여겼다.
그러나 구한 말인 1895년 양력이 채택되면서 신정과 구별되는 구정으로 빛이 바래기 시작했고, 일제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설을 쇠는 사람들이 핍박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설날이면 학생들의 도시락을 조사해 제사음식을 싸온 학생에게 벌을 주는 일도 있었다.
그후 1985년엔 설날을 '민속의 날'로 지정 1999년에는 '설'의 명칭을 되찾고 사흘간 연휴키로 결정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추기 : 설의 의미 (펌) "뜻 깊은 설 연휴를 맞으소서!"설의 뜻은 보통으로는 '슬프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삼가다'(근신)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의 옛말 '섧다'에서 온 것이다.
설날은 일 년 내내 아무 탈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고 그 해 농사와 관련된 여러가지 축원을 하는 날이었으며 원시시대 금제(터부)의 유제일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날엔 새옷을(설빔) 입기도 한다. 설은 봄, 신춘을 맞기 위해 인간이 얼마나 조심하고 근신해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는 말이다. 설을 언제부터 쇠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민속학자들은 중국의 사서들이 "신라 때 정월 초하루에는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일월신을 배례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아 그 역사가 오래된 것은 분명하다. 축원에 따라 여러가지 놀이와 미풍양속이 하나 둘 덧붙여지면서 겨레의 큰 명절로 지켜져 온 설날의 행사는 섣달 그믐날 밤의 '수세'로 시작된다. '동국세시기'를 보면 전통적으로 설날 아침에 조상에 대해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차례나 성묘, 그리고 새배가 종적인 인간관계의 확인이라면 뒤이어 벌어지는 각종 민속놀이는 횡적인 연대감을 강화하는 의식이다. 이와 함께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면 일찍 살 수록 집안에 복을 많이 안겨준다는 복조리를 사서 실제 조리로도 이용하고 두, 세 개씩 묶어 방 귀퉁이나 부엌에 매어서 그 속에 돈과 엿을 넣어두기도 했다. 이는 다산을 기원하는 농경사회의 염원과 한해의 부지런해야 함을 일깨우는 풍속이다. 그러나 구한 말인 1895년 양력이 채택되면서 신정과 구별되는 구정으로 빛이 바래기 시작했고, 일제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설을 쇠는 사람들이 핍박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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