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태어날 때부터 검은색 자라서도 검은색 태양 아래 있어도 검은색 무서울 때도 검은색 아플 때도 검은색 죽을 때도 여전히 검은색이랍니다
그런데 백인친구들은 태어날 때는 핑크색 자라서는 흰색 햇볕을 쬐면 빨간색 추우면 파란색 무서울 땐 노란색 병이 들면 녹색이 되었다가 죽을 때는 회색으로 변하면서 이래도 너는 나를 유색인종이라고 하는지?
유엔이 지난해 선정한 ‘최고의 동시’입니다. 제목도 지은이도 알 수 없는 그 시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잿빛 하늘 때문만은 아닙니다. 신의 저주일까, 윤회나 업보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그 어떤 수사(修辭)로도 이 검은 피부 어린이의 비애와 좌절, 절망과 분노를 삭여 줄 대안이 있을까 하는 참담함 때문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카르마(Karma:숙명)는 피부색만이 아닙니다. 사람의 수명이 그렇습니다.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불로초를 구하려 했던 진(秦)의 시황(始皇)도, 세습 왕조를 구축했던 김일성(金日成) 김정일(金正日) 부자도 죽음을 거부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 다른 불가항력은 자연의 위력입니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대기권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고, 한 달이 멀다하고 발생하는 홍수 폭우 폭설 돌풍 화산폭발에 인간은 속수무책일 뿐입니다. 다만 죽음과 재해는 일시적이지만 피부색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수모와 갈등을 감내해야 하는 점이 다릅니다.
그러면 종내 이 흑인 어린이의 마음을 달래주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할 방안은 없을까. 다행하게도 성녀 테레사(Mother Theresa:1910~1997)가 그 답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성녀는 ‘사랑이 없어서’ 제하의 시를 통해 고독과 절망과 좌절의 유일한 치료제는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가장 큰 병은 결핵이나 문둥병이 아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병이다 육체의 병은 약으로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고독과 절망과 좌절의 유일한 치료제는 사랑이다 세상에는 빵 한 조각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알바니아 출신인 테레사는 1928년 로마 가톨릭 수녀가 된 직후 인도로 건너가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50년 콜카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한 그녀는 아예 인도에 귀화해 45년간 빈민과 병자, 고아와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노벨평화상(1979년)과 인도 최고 시민훈장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20세기의 성녀’로 추앙받게 한 것은 상과 명예가 아닙니다. 노벨상 수상 후에도 테레사는 사랑의 선교회를 123개국 610개 단체로 확장하고 나병ㆍ결핵ㆍ에이즈 환자 요양원, 무료급식소와 고아원, 학교 등을 설립하여 죽을 때까지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法語)로 잘 알려진 전 조계종 종정 성철(性徹, 1912~1993) 스님도 평생 사랑을 강조하였습니다. 스님은 “누구든 내 앞에 돈 갖다 놓고 명 빌고, 복 빌고 하지 말고 진정 나를 믿고 따른다면 내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부처님 말씀을 빌려 중생을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성철 스님은 세 가지 불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버스 안에서 노인이나 병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거나, 정신적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을 좋은 길로 인도해 주거나, 길거리에 앉아서 적선을 비는 사람에게 동전 한 닢을 주는 것이 진정한 불공이라고 했습니다. 불공은 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법문입니다. 대신 남이 모르게 남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병들어 거의 죽어가는 버려진 강아지에게 식은 밥 덩어리 하나 주는 것이 부처님 앞에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백천만 배 절하는 것보다 훨씬 큰 공양이다.” 늘상 그렇게 불자들을 가르친 스님은 생식(生食) 16년, 장좌불와(長坐不臥) 6년에 5천 권의 장서를 갖추고 독학으로 영어ㆍ불어ㆍ독어ㆍ일본어ㆍ중국어를 구사하면서도 남몰래 남을 돕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철 스님과 같은 해 별세한 여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은 아프리카에서의 봉사활동으로 마지막 생을 아름답게 장식했습니다. 헵번이 숨지기 1년 전 크리스마스 때 사랑하는 딸에게 전한 유언 형식의 쪽지에는 그녀의 신앙에 가까운 선심(善心)이 가득 배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해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의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해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돼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져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남을 돕는 손이다
벨기에 출신 헵번은 미모와 연기로 만인의 연인이었습니다. ‘로마의 휴일’ ‘샤레이드’ ‘마이 페어 레이디’ ‘전쟁과 평화’ 등 불후의 명작도 남겼습니다.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은 영화에서가 아니라 그녀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미래연구 기관인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얼마 전 2025년쯤에 각광받을 인기 직업의 하나로 기억수술 외과전문의를 꼽았습니다. 사람의 뇌에서 나쁜 기억을 제거하거나, 우울증 알츠하이머 등 정신질환을 수술로 치료하는 기술입니다. 세밑에 그런 기술이 앞당겨 현실화 되어 악몽들을 말끔히 없애버리고, 사랑의 온도계를 높일 수 있으면 오죽 좋겠습니까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