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권력 이양 이후 시장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붕괴할 것”이라고 바실리 미헤예프(Vasily Mikheev, 57) 러시아 국제경제ㆍ국제관계 연구소(IMEMO) 부소장이 전망했다.
러시아 최고 권위의 국책 연구기관인 IMEMO가 지난 9월 펴낸 ‘전략적 세계전망 2030’ 보고서는 미헤예프 부소장이 작성을 주도했으며, 최초로 북한 붕괴 시나리오를 언급했다.
보고서는 북한 상황에 대해 “붕괴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다”며 “2011년~2030년의 후반에는 한반도가 통일에 이르지는 못해도 통일 과정의 실질적인 단계에 접어들 것이며, 결국 북한은 현재와 같은 형태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미헤예프 부소장은 “김정은에게로 권력 이양 후 서구 사회와 사업을
해온 관료집단이 사적 이득을 위해 시장화를 추진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관료집단과 경제적 이득을 얻지 못한 군부가 서로 주도권 다툼을 벌이게 돼 결국 김정은 체제는 붕괴된다”고 말했다.
김정일 후계 수업 때와 주변 정세 달라, 변화 없이 존속 불가능
그는 또 “김정일이 20여 년 전 후계자 수업을 받았던 때는 전 조직의 공인된 2인자였으나,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일 뿐이어서 100% 장악한다고 보기 어렵고, 더구나 북한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도 시장경제 체제로 바뀌는 등 김정일 때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참고로 미헤예프 부소장은 1981~1984년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1등 서기관을 지내고, 1980년대 말에는 한ㆍ소 수교(1990년)에 관여하는 등 한반도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김정은의 정치적 능력이 탁월하다면 10~20년 정도는 권력ㆍ체제유지가 가능할 수 있지만, 북한 주민도 이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이 별로 없고, 지배 엘리트들도 체제에 대한 주인의식이 약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내 권력 유지에 필요한 요소들이 사라지는 현상 나타나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협동과정 교수도 ‘2011 평화통일과 관광산업의 미래’ 세미나에서 “김정은 체제에서 단기간에 북한 체제가 붕괴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존속이 불가능 할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김정은 체제에서 점진적인 개방을 통해 당분간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은 크지만 이미 상당수의 북한 주민이 시장을 떠나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공급 능력이 부족한 북한 김정은 체제에서는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않아도 북한 당국이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핵심 요소 하나둘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붕괴의 전조가 아닌가 의심케 한다. 우선 북한 배급시스템의 완전 붕괴를 들 수 있다.
주민은 정권만 바라보다가는 굶어죽게 생기자 먹고살기 위해 사설시장으로 발길을 옮기게 됐다. 북한 정권은 처음에 이 사설시장을 통제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현재는 묵인한 채 그냥 놔두고 있다.
북한 주민이 외부세계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 만들어 줘야
또 그동안 주민을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단절 시켰던 고립정책도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60%가 휴대전화ㆍDVDㆍ비디오ㆍ라디오 등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외부 세계의 정보를 직ㆍ간접적으로 얻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2만 3,000명 이상의 북한 이탈주민들도 고향에 남겨진 가족과 소통하면서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의 동양학자이자 한국학자인 안드레이 란코프 박사는 “최근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암시장을 통해 금지된 정보가 북한전역에 CD나 USB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주민이 외부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접하게 되면 3대 세습체제 등 북한 정권을 불신하게 될 것이므로 외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책연구소 IMEMO의 ‘북한 정권 붕괴’ 지적은 현재 김정일 부자의 강력한 단속 지시에도 불구하고 멈춰지지 않는 탈북 행렬이나 한류열풍 및 외부 소식 유입ㆍ장마당 활성화 등이 보고서의 신뢰를 더해 주고 있어, 나름 대비책 강구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