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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원한 생명의 이치

雲光 2009. 11. 9. 03:29

우리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생명에는 절대적인 삶과 죽음이 없습니다 마치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다고 하지만 해는 하늘에서 언제나 빛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지구에서 해가 보이는지 아닌지에 따라 해가 뜨고 진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방에만 한정해서 보면 어떤 사람이 방문을 열고 들어올때 한 사람이 생겼다 하고 방문을 열고 나가면 한사람이 없어졌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 방 밖에까지 이어서 보면 그 사람은 생긴 것도 없어진것도 아닙니다 바로 그 옆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 것처럼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이전에도 나는 있었고 나와서도 있고 죽어서도 있습니다

이 생명의 불생불멸하는 이치를 알게 되면 태어난다고 하지만 태어나는 것도 아니며 죽는다고 하지만 죽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났다고 말하는  건 이 세상에 왔다 는 것이며 죽었다는 것은 저 세상에 갔다 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태어난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고 죽는다고 슬퍼할 일도 아닙니다 태어남도 죽음도 본래 없고 다만 윤회전생 할 뿐입니다

영가가 이 이치를 안다면 죽으려야 죽을 수 없고 태어나려야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이 생명에너지는 불생불멸해서 영롱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자기가 아는 세계에 집착해서 태어나고 죽는다고 얘기를 하지만 그것은 생명의 실상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생명의 본래 입장에서 보면 불생불멸하기 때문에 우리는 울 일도 웃을 일도 없어요 옷 갈아입는 것이 울 일도 웃을 일도 아닌 것처럼 그냥 일상생활처럼 허허로운 겁니다  이걸 만약 영가가 깨우쳐서 알게 되면 몸을 버렸다는 것에 전혀 슬퍼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인간이 100살 살면 오래 산다지만 생명 본래의 입장에서 보면 오래 사는 게 아닙니다

하루 사는 하루살이에게는 오후4시에 죽는 것과 오후 5시 6시 에 죽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사람이 볼때는 마찬가지지요 개미에게는 7일 살지 8일 살지 9일 살지 그것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리 보기엔 매한가지죠 구더기가 작은 똥 덩이를 갖거나 큰 똥 덩이를 갖는 건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그 작은 벌레에겐 아주 큰 일이란 말입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보기에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 재물의 많고 적음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지만 저 생명 본래의 세계데서 볼때는 참으로 하잘 것 없는 일입니다 그래 이 하잘 것 없는 것에 집착해서 괴로워해서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영가는 집착을 놓아야 합니다 만약 영가가 누군가를 아직 사랑하거나 미워하기 때문에 산 사람 곁을 계속해거 뜨나지 못하고 있으면 길 떠나지 못하는 영가는 새 생명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새 몸을 받지 못합니다 헌 옷은 벗었는데 새 옷을 입지 못하니 벌거숭이로 있게 되는데 바로 허공의 무주고혼이 됩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자식에게 가까이 오면 자식이 큰 사고가 나거나 큰 병치레를 하게 되는 겁니다 현대 의학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병 때문에 어디 가서 물어보면 조상의 영가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가가 좋은 마음으로 자식에게 집착해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재앙이 되고 또 원한을 품고 따라다녀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렇게 좋아서든 미워서든 영가가 살아 있는 사람곁을 떠나지 않으면 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 도리를 꼭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재 지내는 자식들 살아 있는 살람들은 영가를 애타게 찾아 울고 부르면 가야 될 사람이 가지를 못 합니다 가지 못하고 되돌아오니까 무주고혼이 됩니다 그러니까 안녕히 가십시요 하는 기쁜 마음으로 갈 사람은 잡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들은 장례하는 집에서 죽은 사람을 앞에두고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집 사람들이 수행이 덜 되어 복은 커녕 재앙이 오겠구나 이렇게 아는 겁니다 또 죽은 사람이 한살이든 다섯 살이든 열 살이든 백 살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먼저 감을 마음 아파하며 울고불고 할 게 아니라 몸을 이미 버렸으니 잘 떠나가게 천도해줘야 합니다 영가를 위해 베풀고 참회해야합니다 한편 영가는 몸을 벗고 식이 영롱한 이때 법문을 듣고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눈으로 보아서가 아니라 귀로 소리를 들어서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서로 오가는 중에 이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고해를 되풀이 하는 것 인연 과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육도를 계속 돌게 하는 업을 짓는 것은 내 것이다 네 것이다 하는 탐욕심 이 그 첫째 원인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물건도 본래부터 내 것이라고 정해진 게 없습니다 태어 날때  가져온 것도 죽을 때 가져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그냥 있을 뿐인데 내 생각으로 내 것이다 네 것이다 라고 마음에 새겨 두어 갖은 탐욕을 일으킵니다 본래 내 것 아닌 줄을 알아 베푸는 마음을 냄으로서 모든 탐욕을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 판단이 옳다고 하는 진심 이  그 두번째 원인이 됩니다

내가 옳다는 이 생각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성내고 짜증내고 그래서 남을 미워하게 됩니다 만약 남편이나 자식 부모나 친구에게 무언가 섭섭한 것이 있어 그것이 가슴에 맺혀 내가 원한을 품었다면 그 섭섭함을 만든 것은 부모가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자식이나 남편 또는 친구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한데서 생긴 감정의 찌꺼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옳다는 이 생각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성내고 짜증내면서 남을 미워하게 됩니다 영가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남편이나 자식 부모나 친구에게 무언가 섭섭한 것이 있어 그것이 가슴에 맺혀 원한을 품었다면 그 섭섭하게 만든 것은 부모가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자식이나 남편이 또는 친구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생각이 옳다 고 고집한 데서 생긴 찌꺼기 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판단이 내 생각이  옳은데 그렇게 해 주지 않은 것을 자신이 섭섭하게 여기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본래 옳고 그른 것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옳고 그른 것이 없는 줄을 알게 되면 모든 원한은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깨달아 뉘우치고 고치는 참회를 함으로써 내 옳다는 생각을 버려서 이 어리석은 괴로움의 바다에서 바로 해탈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천도 법문하는 근본 뜻임을 영가의 제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49재를 지내는 이유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 근거해서입니다 정토삼부경 에는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이 있습니다

그 경을 보면 그 어떤 사람도 죽기 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에 귀의하는 나무아미타불 을 열 번만  부르면 누구나 다 저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나쁜 짓을 아무리 해도 죽을 때 간절히 부르면 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쁜 짓을 평생 하던 사람이 목숨이 다 할때 갑자기 부처님이 날 불러질까요? 불러지지 않습니다  죽을 때 한 번 선한 마음을 내면 누구든 극락세계에 갈 수는 있지만 그런데 죽을 때는 급할때라 선한 마음이 잘 안납니다

보통때의 우리 모습을 보면 기분 좋을 때 선한 마음을 내는 게 됩니다 아주 선한 사람도 몸이 아프거나 괴로우면 선한 마음이 잘 안 나옵닌다 성질을 부립니다

그런데 사람이 갈 때는 몸이 많이 아프고 마음이 바빠서 신경이 아주 날카로워 집니다 그러니 보통 때 툭하면 성질내고  짜증내고  못 된 생각하던 사람이 그 급한 상황에서 좋은 마음을 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누가 욕해도 나무아미타불 화나게해도 나무아미타불  내 재물 가져가도 나무아미타불  몸이 아파도 나무아미타불 할 정도로 연습이 되어야 숨이 끊어질 때 그 소리가 나오지 그렇게 안하면 절대 안 나옵니다 아무튼 죽기 전에 아미타불 열 번만 간절히 부르면 누구나 극락세계에 태어납니다

우리 불자들이 평소에 그렇게 열십히 집중해서 염불하다가도 돌 뿌리에 탁 채어 넘어지면 그 순간  엄마야 이래요 어릴 때부터 엄마를 불렀던 습관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돌 뿌리에 채여 넘어지는 것보다 급할 때가  죽음에 즈음해서입니다 그때 언제 관세음보살이 나오고 아미타불이 나오겠어요? 그러나 평소에 부지런히 정진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마음을  맑게 하여 자기를 관찰하고 정진하는 사람은 목숨이 딱 끊어지면 바로 왕생극락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처럼 거기엔 시간이 하나도 안 걸립니다 그렇게 되려면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 을 부르며 정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수행하지 못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죽을 때 나무아미타불을 간절히 부르면 죽은 지 49일 만에 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해서 49재를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49재는 생명이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생명의 흐름을 순조롭게 하는 하나의 의식 절차인 것입니다

근본은 어디까지자 한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깨달으면 이런 절차가 필요 없습니다 그게 안되기 때문에 이런 의식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를 지낼 때는 절대 울거나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영가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가시게 하고 좋은 과보로 다시 돌아와서 기쁜  마음 으로 만나서 고통 받는  중생을 함께 구제하는 보살행을 하자는 마음으로 재를 지내야 합니다  그래서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여 영가를 천도시키면 그 공덕의 대부분은 천도를 하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베푸는 사람에게 공덕이 있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공덕이 있고 법문 듣는 사람에게 공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깊은 뜻을 알아서 정성을 쏟아 기도해야 합니다

영가여 ! 당신의 본래 면목은 무엇인가?

눈으로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머리로 알음알이를 하면서

나다  나의 것 이다 나의 생각이 옳다 고

지금까지 나 를 고집해 왔는 데

이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냄새 맡지도 맛보지도 감촉하지도 못하고

알음알이도 하지 못하는 지금에 이르러

영가여! 무엇이  참  나 인가?

영가여! 영가의 본래면목 은 무엇인가?

 

이걸 깨우쳐야 해탈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평생을 살아도 허깨비 같은 인생을 사는 겁니다 이제까지는 이름이 나 인 줄 알고 이름에 집착했습니다 직장이 나 인 줄 알고 사장이라는 직책이 나 인줄 알고 직장과 직책에 집착했습니다

이 허망한 육신이 나인 줄 알고 재물이 나인 줄 알고 그것에 집찹해서 우리는 헛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가 아닙니다 이제 나의 본래면목을 찾아야 영생불멸하는 생명의 실상을 보게 됩니다

 

      법  륜    스님의 영가 법문    끝

출처 : 스마일법인성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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