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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면앙정 (免仰亭)-송순

雲光 2009. 7. 12. 18:36

면앙정 (免仰亭)


면앙정.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를 갖고 있다

면앙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송순이 고향 마을인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뒷산 제월봉 언덕 위에 지은 정자이다. 이렇게 면앙정은 정자의 이름이면서 송순의 호이기도 하다. 면앙이란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아무런 사심이나 꾸밈이 없는 너르고 당당한 경지를 바라는 송순의 마음이 여기에서 읽힌다.
면앙정으로 오르는 길은 꽤 가파르다. 잔뜩 우거져서 어둑신한 대숲 사이 비탈에는 댓잎이 푹신하게 떨어져 쌓였고, 그 사이로 알맞은 너비의 돌계단이 이어진다. 계단을 다 오르면 갑자기 시야갸 탁 트이면서 제법 너른 평지가 나서고 그 언덕 끝에 수수한 정자가 서 있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규모인데, 가운데 한 칸짜리 방이 있고 빙 둘러 사방에 마루가 깔려 있어 주변의 자연을 안아들인다. 여기서 바라보는 전망의 중심은 정자 뒤편에 있다. 저 멀리 아련히 이어지는 산줄기들과 언덕 아래에 뚝 떨어져 깔린 평야, 그 위로 시원하게 트인 하늘이, 내다보는 사람의 마음을 활달하게 한다.
송순이 처음 이 정자를 지은 것은 나이 41세 되던 조선 중종 28년(1533)이었다.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던 그는 당시 조정에서 김안로 일파가 세력을 잡자 고향으로 돌아와 뒷산에 소박한 정자를 짓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 3년여 은거하던 송순은 김안로 일파가 실각하자 다시 조정에 나아가, 몇 차례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77세에 의정부 우참찬에 이르기까지 관직 생활을 했다. 마침내 관직을 은퇴한 그는 9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온전히 면앙정에 머물며 유유자적하는 가운데 많은 가사를 남겼다. 또한 김인후, 임억령, 고경명, 정철, 임제, 양산보, 김성원, 기대승, 박순 등이 좋은 경치와 노학자를 찾아 이곳을 드나들며 시짓기를 배우고 즐겨, 이곳은
호남 제일의 가단(歌壇)을 이루었다.
정자 안에는 퇴계 이황과 하서 김인후의 시, 고봉 기대승의 '면앙정기', 백호 임제의 '면앙정부' 그리고 송순 자신의 <면앙정 삼언가> 등이 판각되어 걸려 있다. 송순은 60세 때 정자를 증축하고는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땅을 내려다보기도 하며 바람을 쐬면서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되었으니 나의 본래 원하던 바가 이제야 이루어졌다"라고 기뻐하며 기대승과 임제에게 '면앙정기'와 '면앙정부'를 부탁했었다.
정자 앞에는 가사문학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면앙정가> 한 구절을 새긴 비가 서 있다. 정자 앞과 뒤에 선 큰 참나무 두 그루는 송순이 정자를 지은 후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 전해지며, 제월봉 정상 쪽으로 100m쯤 간 곳에는 송순의 무덤이 있다.
원래의 정자는 선조 30년(1597)에 임진왜란으로 부서졌고 1654년에 후손들이 다시 지은 후 몇 차례 보수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건물 자체는 간소하지만 역사적 의의가 크기에 1972년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송순이 말년에 면앙정을 두고 읊었다고 전해지는 이 시조에는 우리 민족의 자연주의적 정원관이 잘 나타나 있다.
                                                             <답사여행의 길잡이>에서 인용

면앙정으로 가는 길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명앙정 옆에 세워져 있는 면앙정가비 (면앙정가의 한 대목이 새겨져 있다)

출처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글쓴이 : 지식창고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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